명청조와의 비교를 통해 본 조선시대 家禮 연구의 특색과 연구방향

Title
명청조와의 비교를 통해 본 조선시대 家禮 연구의 특색과 연구방향
Other Titles
Features in Study of Family Rituals in Joseon Compared to Ming-Qing and Future Research Direction
Authors
이봉규
Keywords
『가례』 行禮, 행례, 古文經學, 고문경학, 尊王, 존왕, 과 行王, 행왕, 家政, 가정
Issue Date
2013
Publisher
한국사상사학
Series/Report no.
한국사상사학; 제44권 pp 231~272
Abstract
조선시대 『家禮』 연구는 行禮를 중시하였고, 사대부들은 國典의 개정을 추진하여 일정 부분 성공하였다. 반면 명초 『효자록』에서 개정된 服制 규정은 경학상 전거가 없는 것이었지만, 청말까지 변동없이 국전으로 존재하였고, 개정하려는 어떤 시도도 없었다. 이것은 황권이 강고하였던 사회와 사대부의 정치적 참여가 활발하였던 사회의 차이가 낳은 결과라고 생각된다. 명청교체 이후 조선에서는 尊王과 行王의 문제의식 속에서 『家禮』의 불완전함을 보완해갔고, 변례에 대처하는 해 석적 시야들이 학파적, 정파적 관련 속에서 18-9세기에 변례를 접성한 예서들로 성문화되였다. 중국에서는 명대부터 『가례』를 실행할 수 있도록 간소화하는 경향이 있었고, 청조에 들어서 人情에 부합하는 예를 행하는 차원에시 시속을 적극 수용하는 형태로 『家縮』를 재편하는 활동이 더욱 확대되었는데, 그 배경에 理學의 理가 人情과 괴리되어 있다는 청대 고문경학의 비판이 있었다. 『가례』 연구와 수행이 『가례』를 현실에 실행할 수 있도록 재편해간 점에시 공통적이지만, 명청조의 경우 현실적응적 실용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였다면, 조선에서는 이 념구현적 실용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였다고 할 수 있다. 가례 연구는 지배층의 정치적 文飾의 측면에서 상당히 축적되었다. 이제 정치적 폭력들에 대하여 對處하는 방법으로서 예를 제시하고 예제를 수행하였던 맥락에 대하여 살퍼보는 연구가 필요하다. 동시에 조선후기 출현하는 經濟書들은 가례를 수행하는 공동체의 경제적 운영이라는 經濟像을 담고 있다. 가례문화를 연구할 때 儀禮의 치원에서 또는 윤리적 인륜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을 벗어나 家範파 經濟를 함께 고려하여 ‘家政’의 차원에시 접근할 필요가 있다.
URI
http://dspace.inha.ac.kr/handle/10505/34165
ISSN
1226-9441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Humanities (문과대학) > Philosophy (철학) > Local Access Journal Papers, Reports(철학 논문,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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