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禹錫의 詠懷詩 硏究

Title
劉禹錫의 詠懷詩 硏究
Authors
서정란
Keywords
유우석의영회시연구
Issue Date
2010
Publisher
인하대학교
Abstract
劉禹錫이 살았던 中唐은 安史의 亂 이후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러나 문학상에 있어서는 韓愈, 柳宗元, 白居易, 元稹 등의 대가들이 등장하여 唐詩의 부흥기라 일컬어질 만큼 왕성한 모습을 보여주던 시기다. 劉禹錫 또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가를 이루었다. 劉禹錫은 德宗 貞元 5年(793)에 과거에 급제하고 24세 때에 太子校書라는 벼슬을 시작으로 武宗 會昌 2年(842) 71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일곱 황제 밑에서 순탄치 않은 관직 생활을 하였다. 정치에 참여하여 사회의 폐단을 파악하고 정치혁신을 통해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러나 永貞革新 실패 후에 郎州司馬로 좌천되어 元和 元年(806)부터 9년을 보냈고 815년 봄에는〈玄都观詩〉로 인해 連州, 蘷州, 和州의 刺史로 전전하였다. 말년에는 조정의 배척을 받아 다시 蘇州, 汝州, 同州의 刺史로 지방을 전전하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23년의 폄적기간은 정치적 기개를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시기였다. 그러나 시를 창작할 수 있는 여가와 환경이 주어졌다. 폄적으로 인한 고독과 비애감으로 인하여 劉禹錫은 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아울러 그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행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에 대한 반성과 분석을 통하여 교훈을 얻었다. 역사를 관조하는 가운데 현실을 비판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가운데 자신의 회포를 풀었던 것이다. 劉禹錫의 詩에는 비분강개함, 적막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중앙 정계로의 복귀에 대한 갈망이 표출되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이 표현되었으며 위정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신랄한 질책과 백성들의 질고에 대한 동정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그의 詠懷詩는 백성을 착취하는 봉건통치자와 그로 인해 심한 빈부격차가 생기는 사회현실을 주로 비판하였다. 또한 권세가들의 음란함과 사치, 과거제도와 관료사회의 부패를 지탄하였다. 역사의 회고와 교훈을 겸한 詠懷詩는 中唐詩歌의 수준을 높이고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데 일조하였다. 노년에도 懷才不遇를 읊고 있으며 모순된 사회와 혼란한 세태에 대한 비판적인 경향을 띄었다. 劉禹錫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기개를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현실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준 시인이다. 본 논문 제 2장에서는 詠懷詩의 변천에 대해서 살펴보고 제 3장에서는 劉禹錫이 살았던 中唐의 사회 환경과 그의 생애를 살펴보았다. 제 4장에서는 劉禹錫의 詠懷詩에 대한 譯註와 解說을 하였다.
Description
Ⅰ. 序論 1 Ⅱ. 詠懷詩의 변천 3 Ⅲ. 中唐 사회 환경 및 劉禹錫의 생애 8 1. 中唐 사회 환경 8 2. 劉禹錫의 생애 18 Ⅳ. 劉禹錫 詠懷詩 譯註와 解說 21 Ⅴ. 結論 65 參考文獻 67
URI
http://dspace.inha.ac.kr/handle/10505/4279
Appears in Collections:
College of Education(사범대학) >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교육대학원) > Theses(교육대학원 석박사 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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