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西間島 거주 移住韓人들의 생활 양태 - “楚山江北戶籍”(1902년) 자료의 분석 사례 -

Title
20세기 초 西間島 거주 移住韓人들의 생활 양태 - “楚山江北戶籍”(1902년) 자료의 분석 사례 -
Other Titles
Residence Status of Korean Immigrants in West Gando in the Early 20th Century: An Analysis of the Chosan Gangbuk Family Register(1992)
Authors
임학성
Keywords
West Gando(西間島), Chosan-gun(楚山郡), Yalu River, Korean immigrants, new type of family register(新式戶籍), diaspora
Issue Date
2014-12
Publisher
동북아역사논총
Series/Report no.
동북아역사논총 ; 46권 pp 193~219
Abstract
19세기 후반, 간도 지역(압록강과 두만강의 이북 지역)에 대한 청 정부의 封禁 정책과 조선 정부의 越江禁止 정책이 폐지되자 이 지역으로의 조선인/韓人과 청국인의 이주·정착이 가능해졌다. 특히 이 지역은 조선인들에게 ‘기회의 땅’ 또는 ‘신천지’로 인식되었기에 그 이주·정착이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한인들의 간도 이주 및 정착이 多大해지자 조선정부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이주한인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19세기 말부터 官吏를 파견하였다. 파견 된 관리는 가장 먼저 이주한인들에 대한 戶口調査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간도 지역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관리·보호하기 위함이었다. 20세기 초 간도 지역에 거주한 이주한인들의 호구를 조사한 결과물(즉, 戶 籍 자료)의 일부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남아 있다. 이 호적 자료들 가운데 1902년 평안북도 楚山郡의 江北, 즉 압록강 북쪽에 거주한 이 주한인들을 조사하여 작성한 ‘楚山江北戶籍’ 자료 6책을 분석하여 西間島 지 역으로 이주한 한인들의 호구 및 직업, 가족 구성, 가택 등의 생활 양상이 어떠 했는지를 실증적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로서 확인된 서간도 이주한인들의 생활 양상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02년 3월 호적 자료에 이주한인은 총 1,346戶에 3,951명이 등재되 어 1호당 평균 인구수가 3명 미만(2.9명)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적은 평균 인구 수를 보인 까닭은 호적 자료에 未成年 가족, 특히 女兒가 거의 등재되지 않은 때문이었다. 이에 性比 또한 여성 100명을 기준할 때 남성이 150명이라는 심 한 불균형을 나타냈다. 둘째, 이주한인 호주들의 성씨는 慶州 金씨(7.3%), 密陽 朴씨(4.5%), 全州 李씨(4.2%), 忠州 金씨(4.1%), 金海 金씨(4.0%), 全州 金씨(3.9%) 등이 상위에 분포하였다. 가장 다수였던 성씨도 그 점유율이 7% 정도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처럼 성씨가 다양하고 고르게 분포하는 양상은 서간도의 이주한인 사회가 集姓村적인 성격을 보이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한편 이주한인 부녀자(妻, 母, 嫂, 婦 등)들의 성씨 분포를 살펴봤더니 호주의 분포 양상과 거의 일치하고 있 었다. 이로써 서간도 이주한인들은 서간도 내에서 局地的 通婚을 하였다는 사 실을 추론할 수 있었다. 셋째, 이주한인 家戶의 가족구성은 호주 단 1인만으로 구성된 가호부터 최 다 7인으로 구성된 가호까지 분포하였다. 이 중 2인 가족(39.3%)과 3인 가족 (28.6%), 4인 가족(19.4%) 등이 상위에 분포하였다. 따라서 2~4인 가족, 즉 ‘戶主夫婦’ 및 ‘호주부부와 1, 2명의 미혼자식’으로 구성된 이른바 ‘夫婦家族’의 결합유형이 전체의 87%나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넷째, 이주한인들의 직업은 거의 전부(97.3%)가 農業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세기 중엽 이후 이주한인들이 간도 지역으로 대거 이주한 주된 이유가 농토 를 개간하여 생계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에 부합하는 양상이었다. 끝으로, 한인들이 서간도로 이주하여 마련한 家屋은 모두 草家로 나타났 다. 그 크기는 최소 1칸에서 최대 6칸까지 분포하였는데 1호당 평균 칸수는 2.5칸 규모였다. 가옥의 크기는 2칸 가옥(55.5%), 3칸 가옥(39.3%), 4칸 가옥 (4.0%) 등이 상위에 분포하였다. 한국인의 가옥은 부엌이 1칸을 차지하는 구조 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20세기 초 당시 서간도에 거주한 이주한인들의 주거 실태는 대체로 열악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의 연구 결과로 나타난 양상들은 19세기 중엽 이후 間島 지역으로 이 주해 간 한인들이 열악하고 힘든 처지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영위해 나갔 으며, 또 한인들의 고유한 전통을 固守하며 공동체 집단을 형성해 나갔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기초 정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하겠다.
URI
http://dspace.inha.ac.kr/handle/10505/39718
ISSN
1975-7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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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관 > 한국학연구소 > Local Access 한국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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