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두만강 지역의 유학자들: 김노규와 김정규를 중심으로

Title
한말 두만강 지역의 유학자들: 김노규와 김정규를 중심으로
Other Titles
韓末豆滿江地區的儒學者們 -以金魯奎和金鼎奎爲中心 -
Authors
우경섭
Keywords
김노규(金魯奎), 김정규(金鼎奎), 두만강(豆滿江), 함경도(咸鏡道), 송시열(宋時 烈), 유인석(柳麟錫), 조선중화주의(朝鮮中華主義)
Issue Date
2014-02
Publisher
한국학연구
Series/Report no.
한국학연구 ; 32권 pp 31~61
Abstract
19세기 말 두만강을 건너 간도로 이주한 수많은 조선인들 중에는 상당수의 전통적 유학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가장 먼저 두만강 너머로 이주했던 함경도 북단의 유교 지식 인들은 대체로 중앙 학계에서 栗谷 李珥와 尤菴 宋時烈에 의해 정립된 서인-노론 학맥을 계승하고 있었다. 송시열의 제자 鶴巖 崔愼과 農巖 金昌協 등이 이 지역에서 강학을 시작 한 이래 그 문하에서 함경도 출신 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하였는데, 19세기 말~20세기 초 이 지역의 대표적 유학자인 鶴陰 金魯奎와 龍淵 金鼎奎 역시 송시열이 제 시한 조선중화주의의 사상적 흐름 속에서 두만강을 중심으로 한 자신들의 생활세계를 인식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수’인 서구의 침략에 직면했던 시대적 상황, 그리고 중국인들과 뒤섞여 거주하 며 함께 항일운동을 전개해야 했던 역사적 경험은 한반도의 협소한 시야에 갇혀있었던 전통 적 중화주의의 폐쇄성을 일정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들은 태생적 혈통 내지 지역 보다는 유교문화에 대한 분발 여부가 화이분별의 주된 기준이라는 문화적 화이론의 기반 위 에서, 조선이 중화문명의 계승자일 뿐 아니라 함경도 역시 문명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 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화이의 可變性을 재확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화이가 시대 에 따라 지역적으로 순환한다는 주장을 전개하며, 자신들이 거주하던 두만강 유역을 중화문 명 부흥의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그 곳에서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노력 하였다. 요컨대, 김노규와 김정규 같은 한말 함경도의 유교 지식인들에게 두만강은 청과 조선, 중 화와 이적을 가르는 경계선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두만강 너머의 공간 또한 불우한 유랑의 땅이나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인식되지도 않았다. 지금의 함경북도 일원 및 연변 지 역을 아우르는 새로운 중화세계의 건설, 그것이 그들의 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20 세기 초반 적지 않은 유학자들로 하여금 두만강을 건너 연변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게 만들 었던 사상적 배경을 이루었다.
URI
http://dspace.inha.ac.kr/handle/10505/39715
ISSN
1225-46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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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관 > 한국학연구소 > Local Access 한국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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